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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인이다.
어릴때는 교회를 정말 많이 갔다. 뭐 신앙심이 돈독해서가 아니라 친구들이 좋아서 갔다. 성서 이야기를 무척 좋아해서 다들 커서 목사가 될려나 했지만, 그 어릴 때도 속으로 나는 목사 되기 싫어 했었다. 성서 암송대회에서도 웬만하면 크레파스를 타오곤 했다. 그래도 전문 종교인이 되는 것은 싫어했다. 날라리로 좋았다. 부모님들이 한술 더 떴다. 어딘가로 이사간 후 첫번째 일요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교회로 갔는데, 거기 목사님이 예배 후 달려와서는 당연하게도 "원래 어디 교단 소속이시죠?" 하고 매우 친절하게 물어보시자, 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시면서 "우린 기딴거 안 따지니까 쓸데없는 소리말라우!" 하시던 기억이 난다. 한편으로는 좀 민망했는데, 이후 그게 내 신앙을 이룬 큰 기초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어머니는 더 했다.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하도 교회를 나가자 교회를 너무 많이 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항상 내게 경고를 날리셨다. 나는 그것이 한때 융성하던 평안도 기독교인 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함석헌 선생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지만, 그쪽 동네 사람들이 본래 독립심이 강하고 상대적으로 좀 민주적이다(이건 심각한 말은 아니고 평등사상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뜻).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강한 반공주의의 선두에 서고, 그에 따라 기독교 또한 점점 보수적이 되어갔지만, 실제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기독교신학을 공고히 한 사람들은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중학교때 이미 중등부 담당 전도사님과 설교시간에 싸운 적도 있었다. 정말이다.권세에 복종하라는 구절을 하도 강조하길래 설교시간에 벌떡 일어나 이의제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분 당황해서 어떻게 할 줄을 모르고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래서 "하나님 말고는 복종하지 않는게 기독교인 아닙니까?" 하고 계속 나도 반복했다. -.-;;; 그때 중등부 총무였는데 잘리지는 않았다. 선거로 뽑혔으니까. 대학부때는 나름 신앙생활을 열씨미 했는데, 좀 복합적이었다. 이른바 기도하고 찬송하고 울부짖는 일은 무척 싫어했지만, 진보적인 성경공부 모임은 많이 했다. 그래도 어쨌든 교회는 무척 많이 갔고, 심지어 한동안은 교사, 성가대, 대학부 회장을 동시에 하기도 했었다. 크지 않은 규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후는 내 정체가 더 많이 탄로날까봐 줄이지만, 나는 이른바 빨갱이 기독교인이다. 개혁을 위해서 이전에는 개인으로 조직으로 뛰어다녔고, 한동안은 이론으로 했으며, 지금도 비슷한 일에 발을 걸치고 있다. 어떤 커뮤니티에서 기독교 비판 논쟁이 벌어졌다. 처음은 아니고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일인데, 이를테면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모 선교단체 사건 때는 정말 비난의 홍수를 이루기도 했었다. 최근에는 누군가 노상전도, 초인종 누르고 전도하려 들기에 너무나 짜증이 난 나머지 분노의 글을 올렸고, 결과적으로 폭발적 반응을 얻고 많은 추천수를 올리기 시작했다. 비슷한 비난과 사례들이 계속 올라왔다. 그리고 나는 개입했다. 비난을 막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 그 분노들은 정당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정말 괴롭다. 아무튼 그런 비난이 유행하는 한 시기에 보통 그 커뮤니티에 속한 기독교인들은 일제히 침묵한다. 잘한게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은 목소리로 '전부는 아니고 일부인데요' 이래봤자 '전부 막장 맞아!'하는 합창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입을 열어봐야 한순간에 욕을 대신 얻어먹기 쉽고, 일일이 다 받아서 뭐라하기에는 너무 지치고 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고 일단 잠수한다.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내가 개입했던 이유는 이번에도 역시 성서에 쓰인 구절 일부를 맥락없이 발췌 왜곡하여 비판하는데 사용했기 때문이었고, 가끔 신 자체를 모독하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비판은 좋으나 교리는 역린이니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일부가 그러니 다 그런것처럼 마음놓고 욕하는 건 틀렸다고. 그러자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공격해왔다. 그 교리 자체가 문제라고. 작정하고 썼으므로 일일이 다 받아 응답했다. 그러느라 며칠동안 잠을 좀 늦게 잤다. 그래도 전말은 평범했다. 시간이 지나가 다들 결국 잠잠해졌다. 그런거다. 어쨌거나 졸지에 나는 팔자에 없는 호교론자가 되어버렸다. 아마 나를 골통단무지'개'독교인으로 규정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는 나를 드러낼만큼 글을 많이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화는 나지 않았다. 그냥 슬펐다. 대한민국 기독교는 이미 늦은 것 같다는 예감을 다시 확인했다. 저들의 분노는 모두 정당하다. 지하철에서 명동에서 확성기에 대고 외치는 저 소리는 정말 내게는 악마의 소리에 맞먹는다. 쓰나미에 휩쓸려간 영혼들을 향해 교회 안 다녀서 그렇다고 설교하는 목사는 다른게 아니라 바로 악마 그 자체다. 기독교 아닌 나라는 모두 가난하다고 설교하는, 이땅의 모든 사찰이 무너지길 기도한다는 목사와 그걸 따라하는 신도들은 바로 사탄의 무리들이다. 십만명의 선교사들을 파송하겠다는 이 미친 한국 기독교는 정말 이제 한국사회 뿐 아니라 글로벌 악의 축이 되어간다. 슬펐다. 내 할아버지는 신앙과 신념에 따라 망설이지 않고 목숨을 조국에 바쳤다. 내 아버지도 신앙과 신념에 따라 평생을 조국에 바쳤다. 총알 자국이 세곳이나 있을 정도로. 나도 20대와 30대 대부분을 바쳤다. 그분들 뿐일까. 60년대부터 빈민운동을 개척한 분은 바로 허병섭 목사다(지금 원인불명의 뇌병으로 누워계신다). 70년대 인권운동의 선구자들 중 많은 수가 기독교 운동가들과 목사들이었다. 민주화운동의 가장 중요한 캠프 중 하나는 이화동의 기독교회관이었다. 80년대 무수한 학생운동가들을 배출한 요람도 기독청년학생운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에 관해 쓰지 않았다. 그들은 대개 이런 부분은 알지 못하지만, 쓰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천주교가 모든걸 다 한줄 안다. 김수환 추기경은 유행처럼 모두 존경한다 하지만, 함석헌 선생이나 문익환 목사, 김관석 목사, 박형규 목사, 안병무 교수 등은 모른다. 그래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해가 기울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그런 빛나는 전통은 거의 사라져가기 때문이었다. 아니 빛날 때에도 소수였고 지금은 더 소수이기 때문이었다. 물신주의와 배제주의, 탐욕과 오만방자함이 지배하는 한국교회는 희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수는 정상적이고 중도적인 신앙을 가졌다 항변한다 해도, 여전히 침묵하는 한 의미없는 다수이기 때문이었다. 하여 나는 멸종을 앞둔 어느 부족의 변두리 전사다. 아직 망명은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곧 내 부족이 붕괴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뭉툭하고 허름한 창과 가죽 물주머니, 등에 짊어진 단궁 하나와 한 줌의 화살이 내 가진 전부다. 어제는 최후의 언덕에 올라 마지막 봉화를 피워보았다. 하지만 그 봉화를 받아 피워올려줄 동맹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낮은 북소리와 더불어 우리를 둘러싼 적의 횃불은 저 지평선까지 끝이 없다. 내 부족을 위해 싸우다 죽어야하는지, 아니면 저 산등성이를 타고 빠져나가 살아남아야 하는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운명은 나를 내 부족에서도, 외부에서도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살아도 이방인, 죽어도 이방인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교회에 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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